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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오산 죽미령 평화공원, "과거와 미래, 평화가 공존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새롭게 탄생"
5년간의 사업기간 거쳐 지난해 말 준공 완료.. 오는 7월 5일 정식 개장 앞둬
기사입력  2020/06/11 [09:36] 최종편집    박진영 기자

[경인데일리] 전후세대에게는 전쟁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는 공간으로, 미래세대인 아이들에게는 분단의 현실과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 줄 '오산 죽미령 평화공원'이 5년간의 사업기간을 마무리 하고, 지난해 말 준공을 완료해 오는 7월 5일 정식 개장을 앞두고 있다.  

 

 

죽미령 평화공원은 유엔초전기념관 뒤편의 임야를 활용해 약 134,017.7㎡ 규모로 조성됐다. 1950년 7월 5일, 그 치열했던 죽미령 전투를 기억하고 상처를 치유하며 회복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은 평화관과 기억의 숲, 평화의 마당 등이 마련됐다.

 

평화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유엔군 첫 전투의 흔적을 간직한 기획전시실과 UN 역사·문화전시실, 상설전시실, 어린이 체험실, 카페, 키즈룸 등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어린이 체험실에는 죽미령 전투를 1인칭 시점의 VR영상과 그래픽, 특수조명, 효과로 연출했다. 한 인간이 전쟁에 참전한 시대적 상황과 선택의 순간, 죽고 죽이는 전쟁의 잔상과 전쟁을 통해 얻어지는 평화라는 부분을 한 공간에 구성해 암시적으로 평화의 소중한 가치를 스스로 생각하고 느낄 수 있다. 

 

  

또한, 평화의 마당에는 구 유엔군초전기념비, 스미스부대원 540명의 이름을 각인한 워터커튼과 평화공원 상징물, 거울연못, C-54 더글라스 수송기, 어린이 놀이터 등이 마련됐고, 기억의 숲에는 23m 대형태극기, 디오라마 전망대, 산책로 등이 조성됐다.

 

오산시는 올해 6․25전쟁 및 오산죽미령 전투 70주년을 맞아 오는 7월 5일 스미스부대 전몰장병 추도식과 오산 죽미령 평화공원에 대한 정식 개장식을 진행할 계획이다. 

 

오산 죽미령 전투.. 북한군과 유엔군의 첫 교전지 

 

죽미령은 6.25 전쟁 당시 스미스 부대가 유엔군의 일원으로 북한군과 첫 교전을 벌인 곳으로, 국제사회가 유엔군으로 본격 참전한 시작점이자 6.25전쟁이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는 국제전으로 비화하는 계기가 된 곳이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북한군은 계획대로 사흘 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남침을 계속했다. 그러나 전쟁 발발 10여일만에 7월 5일 오산에서 복병을 만나게 된다. 예상에 없던 미군이 참전한 것이다. 

 

이 사건이 바로 죽미령 전투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미 극동사령관 맥아더 장군이 6월 30일 '지상군의 한반도 투입'을 건의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큐슈지방에 주둔하고 있던 스미스부대(미군 24사단 제21연대 1대대)가 곧바로 한국전쟁에 투입된다. 

 

540명으로 구성된 특수임무부대 스미스부대는 비행기를 타고 부산에 도착해 7월5일 새벽 오산 죽미령 고개에 진지를 구축했다. 

 

 

북한군은 이날 오전 8시 당시 최강이라고 불린 T-34전차를 앞세워 남침을 이어갔다. 스미스부대는 105㎜ 곡사포, 75㎜ 무반동총, 2.36인치 로켓 등으로 대응했으나, 36대의 전차 중 단 4대만 파괴했을 뿐 속절없이 전차 부대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어 오전 11시45분 전차를 앞세운 북한의 보병군과 백병전이 벌어졌다. 스미스 부대는 모든 화기를 투입했지만, 5천여 명의 보병을 맞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오후 2시30분 스미스 중령은 위포(은계동)로 철수명령을 내렸다. 위포에 모인 부대원은 185명에 불과했다. 부대는 다시 천안으로 이동해 병력을 재정비했다. 이후 천안에 모인 병력은 종전까지 다양한 한국전에 참전했다.

 

 

재조명이 필요한 '오산 죽미령 전투'

 

비록 전투에 패하였으나 6·25전쟁의 전체적인 상황에서 볼 때 6시간 15간의 죽미령 전투가 갖는 의의를 통한 재조명이 필요하다. 

 

북한은 개전 초기 유엔군이 개입하기 전에 전쟁을 끝낸다는 계획 하에 남침을 감행했는데 죽미령 전투를 통해 유엔군의 참전을 확인 후 재정비기를 가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북한군의 남진을 10여 일간 늦출 수 있었다. 

 

따라서 최후의 보루였던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었다. 또한 스미스 부대의 희생을 통해 유엔군이 북한군의 전력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계기가 되어 맥아더 사령관은 7월 7일 4개 사단의 추가 파병을 요청했으며, 이날 유엔도 결의문을 통해 모든 회원국들이 적극적으로 무력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훗날 낙동강 전선에서 포로가 된 북한군 제2군단 작전참모인 이학구 총좌는 “7월 초에 미군이 전쟁에 개입할 줄은 몰랐으며, 사실을 안 공산군은 크게 놀랐다”고 증언하였고, 맥아더 사령관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스미스 부대의 투입은 부산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한 피할 수 없었던 죽음의 작전이었다고 말했다.

 

부대를 이끌었던 스미스 중령도 1981년 12월 7일 회고문에서 “우리 부대는 적의 공격을 불과 몇 시간밖에 지연시키지 못하였지만, 이 전투는 ’미국은 싸워보지도 않고 우방과 동맹국이 파멸하도록 결코 방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고하는데 기여했다”고 밝혔다. 

 

일부 군사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르면 보병이 38선에서 대전까지 7시간가량 걸린다는 것을 예상하면 대략 14일간의 시간을 벌어준 셈이라고 평가한다. 

 

 

이러한 의의를 통해 전투에는 패했지만 전략적인 면에서는 성공한 전투라는 부분이 재조명 되고 있다.

 

죽미령 전투의 재조명을 위해 오산시에서는 유엔군초전기념관을 통해 당시 내용을 전시, 교육 및 추모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숭고한 희생을 바탕으로 미래지향적인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평화공원과 스미스 평화관을 조성하여 희생에 대한 감사와 평화를 실천하는 장을 마련했다.  

 

오산 죽미령 평화공원의 조성 계기

 

1950년 7월 5일 죽미령 전투에 참전했던 유엔군 소속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의 숭고한 희생을 추모하기 위해 1955년 스미스부대 참전 용사들이 한국을 방문해 죽미령에 (구)초전기념비를 건립했고, 1955년부터 매년 7월 5일 유엔군 초전기념비에서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추도식을 거행하고 있다. 

 

오산시에서는 유엔군의 첫 전투인 죽미령 전투를 다시 한 번 더 기억하고 상기하기 위해 참전용사 스미스부대, 한국전쟁사 등을 학예연구하고, 생존한 참전용사들의 직접 겪었던 생생한 전투의 기억을 구술채록과 사진 등의 기초자료를 모으는 사업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13년도에는 유엔군 초전기념관을 개관하게 된다. 유엔군 초전기념관은 매년 3만5천 명의 학생, 보훈가족, 주한미군 등 다양한 시민이 방문하는 수도권지역의 현충시설이자 전쟁·군사 박물관으로 국가수호와 평화교육의 장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오산시는 유엔군 초전기념관에 대한 다각적인 종합개발을 기획했다. 전쟁역사 체험교육은 물론, 자연 속 휴식공간의 기능이 결합된 복합 공원을 조성키로 한 것. 

 

이러한 계기로 조성된 죽미령 평화공원은 기억을 전달하는 전시문화 공간에서부터 여가를 즐기며 역사체험을 통해 평화를 전파하는 평화문화 관광자원으로 거듭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데 기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오산 죽미령 평화공원의 상징적 의미

 

오산시는 경부철도와 1번 국도가 지나가고 있으며 경부고속도로가 관통하고 있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교통로를 통해 병력을 이동하고 군사적 방어, 공격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군사적으로도 요충지라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삼국시대부터도 군사적으로 주목을 받았던 곳이기도 하다.

 

역시 6.25전쟁에서도 죽미령은 전쟁을 피할 수 없었다.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한 전투의 전략적 장소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죽미령 전투는 역사적으로 6.25전쟁에서의 패배한 전투로 결과적인 부분만 보여지고 있지만, 1945년 유엔 창설이후 최초로 유엔기를 앞장세워 파병한 지상군 전투로써 국제사회의 관심을 유도한 전투이다.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인지하고 있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출신인 찰스 랭글(Charles Bernard Rangel) 미 연방 하원의원은 2014년 미 의회에서 죽미령 평화공원 조성사업의 지지발언을 했다.

 

2015년에는 미 연방 하원외교 위원장이 평화공원 조성사업을 지지하는 서한문을 대한민국 국회에 전달하는 등 미국 등 국제사회의 관심이 매우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6시간 15분간의 치열했던 죽미령 전투는 결과적으로 북한군이 남하하는 것을 지연시키며 방어선 구축할 시간을 얻었던 전략적 승리의 전투이다.

 

죽미령이 단순히 전적지가 아닌 한반도 평화와 자유수호의 첫 번째 역사가 되는 시작점이라는 것과 미국의 지지를 받은 사업으로 한미 우호동맹을 다진 결과의 평화공원이며, 더 나아가 남북의 화해협력 및 평화통일 염원이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오산 죽미령 평화공원의 기대효과 

 

우리나라 대표적인 현충시설 큰 곳이 3개소가 전국 곳곳에 있다. 서울에는 전쟁기념관이 있고, 천안에는 독립기념관, 부산에는 유엔평화기념관이 있어 많은 국민이 방문해 전후세대들에게 훌륭한 안보 및 평화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에 오산 죽미령 평화공원 역시 전 세계인들에게 찾는 평화와 문화의 명소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한, 평화공원과 더불어 인근의 독산성 세마대지, 아스달 드라마 세트장, 현재 건축 중인 복합안전체험관, 미니어처 테마파크, 잭슨파크 등은 오산시를 찾는 시민들에게 즐거움과 편안함,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훌륭한 공간이 될 것이며,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는 교육문화 공간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곽상욱 오산시장은 "죽미령 평화공원은 평화를 중심으로 새로운 기억을 창조한 평화의 플랫폼으로, 추모와 교육, 여가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써, 오산시는 물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소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곽 시장은 "문화도 변화하고 진화 되어야 하기에 죽미령 전투를 역사, 전쟁, 향토사, 평화교육 등 다양한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학술적 포럼을 추진해 평화통일로 나아가는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면서 "앞으로 3대대 예비군훈련장이 존치하고 있는 토지를 활용해 남북의 평화와 한미 우호증진을 위한 안보·평화문화를 창조하는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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